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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going nowhere "... 다른 많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 운동의 존재 방식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 옳지 않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건전한 상상력이 상실되어버렸다.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거센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우리 마음속에 남겨진 것은 뒷맛이 씁쓸한 실망감뿐이었습니다. 아무리 거기에 올바른 슬로건이 있고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어도 그 올바름이나 아름다움을 뒷받침해줄 만한 영혼의 힘, 모럴의 힘이 없다면 모든 것은 공허한 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그때 몸으로 배운 것은, 그리고 지금도 확신하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말에는 확실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올바른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공정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말이 본래의 의미를 .. 더보기
AGAIN "그것은 예감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30대 중반을 지날 무렵부터 그 예감은 나의 몸속에서 조금씩 부풀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오기 전에, 즉 내 자신 속에서 정신적인 탈바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뭔가 한 가지 보람 있는 일을 남기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종류의 소설은 쓰지 않을 것이다(쓸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할 만한 작품을 써놓고 싶었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그것도 내가 외국으로 나가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일.. 더보기
약속된 장소에서 "옴진리교의 사건의 경우, 동시대적으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 그 무언가의 내용을 명쾌하게 정의해버리기에는 역시 무리일 듯싶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만주국'적 상황에 관해 언급하는 것과 대체로 같은 이야기를 옴진리교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폭넓은 세계관의 결여'와 그로부터 파생된 '말과 행위의 괴리'다. 많은 이과 계열, 기술 계열 엘리트들이 현세적인 이익을 버리고 옴진리교로 달려간 이유는 개인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으로 품고 있던 것은 자기들이 몸에 익힌 전문기술이나 지식을 좀 더 깊이와 의미가 있는 목적을 위해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대자본과 사회 시스템이라는 비인간적이고 공리적인 밀mill 속에서,.. 더보기
죽는 날까지 열여덟 살 "그것이 나에게 있어, 그리고 이 책에 있어서, 하나의 결론이 될지도 모른다. '의 테마곡'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등을 지고 걸어갈 석양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천용 운동화처럼 소박한 결론이다. 그것을 안티 클라이맥스라고 사람들은 부를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프로듀서라면 영화화 기획을 제의해도 마지막 페이지만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결론이야말로 나라고 하는 인간에게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 더보기
앞날의 일에 대하여 당연한 일이지만, 앞날에 무슨 일이 생길지 따위는 알 수 없다. 절대로 모른다. 알 턱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일인데, 라디오를 듣고 있으려니 "저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록 음악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 것들은 얼른 없어져버리면 좋겠습니다"라는 사연을 디제이가 읽어주었다. 당시는 1950년대 후반, 엘비스 최고 전성기였다. 그 사연에 대해 디제이는 "그렇군요, 이렇게 시끄러운 음악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겠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 어린애였기 때문에 '그런가, 로큰롤은 이제 끝인가'하고 순진하게 믿었다. 하지만 엘비스의 음악은 살아남았고, 롤링 스톤스는 한층 더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해서 몇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이것도 비슷한 시기의 일인데, 한 잡지에 '미래에는 전자두뇌가 일반적으로 보급될까요?.. 더보기
문장을 쓰는 법 장차 글을 써서 먹고살고 싶어하는 젊은이들로부터 종종 "문장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게 좋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같은 사람에게 물어본들 별 뾰족한 수는 없을 테지만, 뭐 좌우지간 그런 일이 있다. 문장을 쓰는 비결은 바로 문장을 쓰지 않는 것이다-이렇게 말해봐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요컨대 '지나치게 쓰지 말라'는 뜻이다. 문장이란 것은 '자, 이제 쓰자'고 해서 마음대로 써지는 게 아니다. 우선 '무엇을 쓸 것인가'하는 내용이 필요하고,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하는 스타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젊은 시절부터 자신에게 어울리는 내용이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는가 하면, 그건 천재가 아닌 한 힘든 일이다. 그래서 어딘가에 이미 있는 내용이나 스타일을 빌려와 적당히 헤쳐나가게 된다. 이미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