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나에게 있어, 그리고 이 책에 있어서, 하나의 결론이 될지도 모른다. '<록키>의 테마곡'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등을 지고 걸어갈 석양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천용 운동화처럼 소박한 결론이다. 그것을 안티 클라이맥스라고 사람들은 부를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프로듀서라면 영화화 기획을 제의해도 마지막 페이지만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결론이야말로 나라고 하는 인간에게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에는 친절한 마음의 편린 같은 것이 보일까?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 태평양 상공에 덩그러니 떠 있는 무심한 여름 구름이 보일 뿐이다.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구름은 언제나 말이 없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하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선을 향해야만 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안쪽인 것이다. 나는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다. 깊은 우물의 바닥을 보는 것처럼. 거기에는 친절한 마음이 보일까? 아니,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같은 나의 성격일 뿐이다. 개인적이고, 완고하고, 협조성이 결여된, 때로 자기 멋대로인, 그래도 자신을 항상 의심하며,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거기에 우스꽝스러운-또는 우스꽝스러움과 비슷한-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나의 본성이다. 낡은 보스턴백처럼 그것을 둘러메고, 나는 긴 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터진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죽는 날까지 열여덟 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