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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그 후

my dearest,






바람을 헤치며 나아가기 보다는 바람을 타는 인생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나 포함 모두가. 하지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어려운 것이다. 어떤 물질적 보상없이 정신적 충만감으로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 또한 선택이고, 자유재량일 뿐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오만한 것이다. 찬 바람이 온 몸을 파고드는 이 계절은 모두에게 혹독하지만, 누군가는 이 계절 끝에 죽게 된다. 누군가는 따뜻한 봄날을 축복으로 여기지만, 버텨낸 누군가는 봄날에 울고만다. 


대부분은 지나치게 미지근하거나, 지나치게 뜨겁다. 그래서 어떤 선택도 그리 따뜻하지 않다. 우리를 일깨우기 위해 누군가는 어떤 자연의 풍경이나, 자연 속의 무고한 생명체의 비유를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들은 '본래 그러하도록 태어난 것이다.' 혹은 본디 그렇게 존재해왔을 뿐이다. 본능과 선택사이의 괴리에서, 우리의 의지와 의식적 선택을 단순히 생명의 본능으로 환원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나 또한, 우리 또한 "이렇게 태어나버렸기" 때문이다.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고 느꼈을 때, 난 여전히 이 세계와 내 자신을 긍정하고 있다고 믿게된 그 순간. 실은 그러한 삶의 의지가 단순히 나의 정신적 성숙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과 물질적 기반, 실체적 고통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때마다 지나치게 뜨거웠던 자신이 지나치게 미지근해진다,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