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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기록

6월 초 어느날의 일기와 오늘의 내가 같이 쓴 일기


1.
밝고 아름다운 곳에서,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았다던 그 사람을 생각한다. 분기별로 이곳에 돌아왔었던 그 사람. 이젠 이름을 말하기도 어려워진 지난 사람. 그는 내게 왔다가 간 그저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담을 수 없었던 시간 그 자체였다. 우리는 이 길을 함께 걷기로 약속했었다. 지난 시간들. 이제 그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되뇌어도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인생의 찬란한 순간들(이라고 믿었던 시간들)은 역설적이게도 뼈아픈 무언가를 남기고 끝이난다. 간절히 피하길 바라면서 맞이하는 마지막같은 것. 

2.
즐거운 시간에도 여기 이 순간에 존재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며,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밀어넣었던 밤을 자꾸만 열어보는 내 자신을 느끼며, 
내가 얼마나 이해받기 어려운 인간인지를 새삼 실감했다. 

분명 그랬다. 내가 웃고, 내가 농담하고, 내가 즐거운 것이었다. 아, 상대는 모르는 내면의 싸움이란 얼마나 처절한 것인가. 정말 누구나 자기만의 고독한 싸움이 있는 것일까? 존재하는 곳에 존재하지도 못하면서, 다르면서 또 같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위로삼으려 했다니. 
상상이 되지 않는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현실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이 나를 더욱 공허하게 만들었다. 

3.
항상 임시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나. 나 스스로가 일시적인 하루를 살고,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삶의 전체를 구성한다. 누군가가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삶의 과도적 형태가 나에게는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어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완의 삶, 나는 늘 애써왔다. 
하지만.
오지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이제사 인정한다고 한들, 그 무엇이 나를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어정쩡한 자세로 움츠린 나를 본다.   

4.
떠나고 싶다. 떠나가고 싶다. 그 누구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희망섞인 비겁함이 느껴진다. 쥐고 있으면서 떠나가려 하는 것. 과거의 어떤 지점에서, 그리고 현재의 이 시점에서만큼은 이세상에서 내가 제일 비겁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