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단단한 지반이라고 생각된 것이 거짓 지반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세상의 검은 심연이 보이기 시작한다.

-김현



어느 추운 겨울날, 학회 뒷정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가 문득 정이현의 소설 <안녕 내 모든 것>이 떠올라, 펑펑 울었다. 읽은 지 오래되어 주인공의 이름이 세희인지 세미인지도 어렴풋한 그 책의 짧은 제목이 너무나 아프게 가슴을 헤집었다. '교수', '연구자'라는 알량하고 모호한 이 한 단어의 인간이 되기 위해 무엇과 작별하며 살아왔는가, 생각하니 비로소 한없이 부끄러웠다.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안녕 나의 모든 것, 하고 용서를 빌며 너의 손을 잡을 것이고 안녕히 나의 모든 것, 하며 아카데미의 삶과 온전히 이별을 고할 것이다. 

-309동 1201호



그러나 해가 저물어도 그 빛은 키 큰 나무 우듬지에 걸려 있듯, 꿈은 끝나도 마음은 오랫동안 그 주위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