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찍한 창밖으로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저녁 7시의 불안을 이야기하는 순간, 처음으로 느꼈다. 내 안에도 넘쳐흐를 무언가가 있다고. 그리고 이제는 하나씩 하나씩, 미약하게나마 글로 풀어낼 수가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이후로도 시작에 대한 강박은 무기력을 불러왔고, 여지껏 그래왔듯이 쓰고싶다는 열망은 마음 한 켠에 먼지처럼 쌓아두었다.
지금도 쉽지 않다. 솔직하면서도 솔직하지 않은. 여름 이후로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고, 이렇게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촘촘하고 미세한 감정의 조각과 생각의 파편들이 흩어지고 나를 찌르고, 누웠다 일어섰다 돌아봤다 걸었다가 주저앉고 울고 웃는 시간들이 계속 되었다. 쉽게 죽지도 않았다. 지금도 죽지 않는다. 살기가 버겁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죽고 싶은 건 아니고, 죽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다자키 쓰쿠루가 한 말 처럼 돋보기를 통해 햇빛을 쬐는 것처럼 아픈 마음을 쪼이고 텅빈 마음을 계속 비춰도 죽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면서, 지금보다 더한 비극을 생각했다. 너도 아플까, 나는 너무, 정말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미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끝없는 순간들을 돌고 돌면서 여기까지 왔다. 폐허, 하늘과 구분되지 않는 검은 바다. 꿈처럼 내 손에 끼고 있던 반지는 다 빠져나갔고, 몇 개를 주워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바다 속에 빠뜨렸던 그 반지는 내 마음 속에서는 아직까지도, 끝을 모르고 가라앉고 있다. 지금도. 아주 조용히.
여러 가지로 쪼개진 마음 속에서도 많은 감정이 스치고, 계속 생각했다. 써야 된다. 지금 이 시기는 기록해야 하고, 열심히 남겨서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터널을 관통하고 있는데, 출구는 없는 이 어두운 공간을 난 기억해야 한다고. 그래야 결국은 내가 사니까. 앞으로 살아갈 테니까. 생각을 그만하고 싶었지만,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생각이 아니니까. 왜 나만 이렇게 반성하고 자책하고 후회하고 돌아보고, 미워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현실 속에선 비틀어진 모습으로 웃어야 할까. 분노와 원망의 감정도 결국은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로 거짓된 행동으로 덮고 덮었다. 차라리 죽자는 결국 어떻게든 살자였다.
조금은 가볍게 털어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사니까. 무기력하고 폐허인 내면에서 굳이 무언가를 건져올리겠다는 의지도 없지만,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난 무언가를 말하고 써야 한다. 나는 말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 하고 싶고, 불쌍해지고 싶지 않은데 호소하고 싶고, 쓰지 못할 것만 같은데, 너무나 쓰고 싶다. 나에 대해서, 내 황폐화된 내면에 대해서,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린 내 과거의 기준들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것을 촉발시킨 너에 대해서, 그리고 너. 사랑, 사랑, 사랑, 고작 사랑. 그리고 거짓말같은 지금 나.
모든 게 내 몫이다.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뒤를 본다. 뒤를 돌아다보는 데, 나는 옆을 보고 갈라진 틈 사이로 너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