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그 후

약속된 장소에서

black_bird 2018. 6. 15. 17:52


"옴진리교의 사건의 경우, 동시대적으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 그 무언가의 내용을 명쾌하게 정의해버리기에는 역시 무리일 듯싶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만주국'적 상황에 관해 언급하는 것과 대체로 같은 이야기를 옴진리교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폭넓은 세계관의 결여'와 그로부터 파생된 '말과 행위의 괴리'다.


많은 이과 계열, 기술 계열 엘리트들이 현세적인 이익을 버리고 옴진리교로 달려간 이유는 개인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으로 품고 있던 것은 자기들이 몸에 익힌 전문기술이나 지식을 좀 더 깊이와 의미가 있는 목적을 위해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대자본과 사회 시스템이라는 비인간적이고 공리적인 밀mill 속에서, 그런 자신들의 자질이나 노력이-그리고 그들 자신의 존재 의미까지도- 허무하게 으깨지고 깎이는 것에 깊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하철 지요다 선에 사린을 뿌려 두 사람의 에이단 지하철 직원을 죽음에 이르게 한 하야시 이쿠오도 분명 그런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는 '환자를 생각하는 성실하고 우수한 외과의'로 주위의 높은 평가를 얻었지만, 아마도 그 때문에 여러 모순과 결함을 품은 현행 의료제도에 차츰 깊은 불신감을 품게 되었고, 그 결과 옴진리교가 제시하는 실행력 있는 정신세계(티끌 하나 없는 강렬한 이상향)에 강하게 마음이 끌렸을 것이다. 


...


그는 그런 이상향에 몸을 던지고, 현세의 때로 물들지 않고 엄격한 수행을 계속하면서, 납득이 가는 의료를 철저하게 실천하여 한 사람이라도 많은 환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꿈을 꿨을 것이다. 물론 그 동기가 순수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여기에서 언급된 비전이 그 나름 아름답고 장관이라는 것도 인정하지만, 그런 순진무구한 언설이 현실과 얼마나 심하게 괴리되어 있는지는 한 발만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눈에 마치 원근감이 없는 신비로운 풍경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설령 그때 우리가 하야시 의사의 개인적인 친구였다 해도, 출가를 결심한 그에게 그 괴리감을 효과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어쩌면 사실은 지금도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하야시 의사에게 해줘야 할 말은 원래는 굉장히 간단할 것이다. 그것은 '현실이란 본래 혼란과 모순을 내포하고 성립되는 것이며, 혼란이나 모순을 배제해버리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견 정합적으로 들리는 말과 논리에 따라 교묘하게 현실의 일부를 배제했다고 믿어도, 그 배제된 현실은 반드시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당신에게 복수할 것이다"라고. 


그렇지만 하야시 의사는 그런 말에는 아마 설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전문적인 말과 매뉴얼화된 논리를 늘어놓으며 날카롭게 반론하고, 자기가 나아가려는 길이 얼마나 바르고 아름다운가를 유창하게 풀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그런 논리를 넘어설 만한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어느 시점에는 입을 다물어버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성을 결여한 말과 논리는 현실성을 내포한(그 때문에 불순물 하나하나를 무거운 돌처럼 질질 끌 수밖에 없는) 말과 논리보다 종종 강한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각각의 방향으로 갈라져버릴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약속된 장소에서> 후기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