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그 후

시간성에 대한 감각

black_bird 2019. 2. 7. 22:30


1. 


때로는 말보다 글이 낫다. 글을 끄적일 때마다 본래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미묘하게 방향이 흐른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다. 손 끝에서 무엇이 나아갈 때마다 독립적인 에너지와 힘을 얻어 뻗어나가는 것처럼, 내 안에서 흘러나와 나에게서 뻗쳐 나가는 것인데도 도무지 내 것 같지 않는 그 감각. 물론 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제각기 뻗어나간다 하더라도, 때로는 조금 더 묵직하게 남길 수 있는 글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무언가 말을 하기 어려워 질 때, 점점 내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자신이 없어져 갈 때, 나는 입을 떼다가도 이 마음을 글로 적어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마음껏 글로 쓰자. 동시에 '글로도 지금 내 마음을 완벽하게 남겨 놓을 수는 없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말보다 글이 주는 힘을 느낀다. 정말로. 


2. 


시간성이란 무엇인가. 시간을 오롯이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 시간을 이용해서 또 다른 시간 속에서 묵직하게 견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과연 이 실감, 체감이 내 안에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한 시간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시간 위를 붕 떠서 살아가는 이 느낌. 루틴이 없다는 것은, 어떤 루틴을 만들어내야할 지 애초에 감이 없다는 것은 아마 이 느낌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살아지는 것인지, 내가 정말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를만큼 애매하고 불안정한 삶. 나는 요즘 너무나 자주 '바로, 지금, 여기'라는 말을 떠올린다. 초조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한다. '그저 지금, 여기를 살자.' 하지만 정말 나는 '지금 여기'를 살아낸 적이 있는가. 과거는 그렇다치고, 미래의 무엇인가를 북극성으로 삼아 우직하게 시간을 살아본 적이 있었는가. 이 자문에 답은 필요치 않다. 아마 지금 이 생의 상태가 그 답일 것인다. '시간을 차분히 밟아나가고 싶다.' 요즘은 시간을 밟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짓밟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길로 형상화하여 목적지를 향해 차분히 밟아 걸어나가는 것,과 같다. 언제나 초조하고, 불안하고, 견딜 수 없어서 무형의 땅을 헤메어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계속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느낌이 든다. 쥐어잡을 힘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계속 속세의 시간은 흘러가고, '빨리 가고싶다' '어떻게든 이 앞의 것만 넘어가고 싶다'는 헛된 바람에 사로잡혀 결국 돌고 돌고 돌아간다. 마치 어제 올라가 본 길 같다. 맞는 길을 올라갔다 생각했는데, 어디에도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없었고 처음에 올라왔던 길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밤이었고, 두려웠다. 


3. 


결국 목적지가 분명했기 때문에 어제는 '잘못된 길'을 벗어나 제자리에 올 수 있었다. 오늘 낮에 본 어제 그 길은, 잘 못 나아갔던 그 길도, 목적지를 향한 올바른 길도, 어떤 것에도 두려운 요소가 없었다. 나는 이미 방향을 알고 있었기에 어제의 두려운 마음이 어리석게 느껴져 버렸다. 밤의 시간과 낮의 시간, 그리고 갈 길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대비가 너무나 명확해서 '막연한 공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생은 이와 같을까. 완벽한 삶은 없으니 틀린 길, 잘못된 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생도 내 가슴 속에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다면, 밤의 길을 걸어가더라도 내가 가닿는 곳에 확신이 있다면, 돌아가든 앞으로 가든 잠시 멈춰서버리게 되든 헛된 것도 두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또한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실패 또한, 착각 또한 경험이 된다. 결국 시간성을 오롯이 받아내고 견딜 수 있다면, 그 원천은 목적성에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 알고나면(진정으로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면) 나는 다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4. 


인생을 유예하는 것 같은 이 느낌. 결국 시간성과, 그 목적과 의미를 제대로 연결시키고 있지 못해서 인 것 같다.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데, 살아내고 있는데 결국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 돌이켜 보았을 때, 내가 이뤄냈고 한 때나마 가졌던 모든 세세한 것들을 허망하게 무너뜨려 버린 것도, 아마 그 두 가지를 제대로 움켜잡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휩쓸려내려가는 해변가의 모래처럼, 나는 언제나 부서지고 서글프고 외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바다를 보며, 그토록 두려워 차라리 울어버렸던 것이었겠지. 더이상 울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사무치게 고독하고 허망했던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