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그 후. 프롤로그.
다시 한번 먼지를 후, 하고 불어내 본다. 이 공간은 정말 오랜만이다.
1.
서른을 기록하던 시간으로부터 (상징적인 의미에서) 멀어지고, 여기에 이르렀다. 행동양식 면에서, 즉 겉모습에서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지만, 정말 많은 내면의 변화가 있었다. 이런 사소한 모든 변화를 나는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을까. 왜곡되지 않는 형태로 그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 가능할까,와 같은 문제를 넘어서서, 그 것의 실질적인 의미 조차 잘 정의내릴 수 없다. 타자로 쓰는 대신, 단편적이나마 노트에 손으로 적었다. 그렇게 꾸준하게 마음을 기록해본다는 것은 (놀랍게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마음이란 것은 활자화되는 순간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쓰고 싶었던 것도 있는 그대로 쓸 수 없었고, 쓰다보면 결이 다른 이야기로 흘러들어갔다. 솔직히 쓸 것은 산더미였지만 손도 아팠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무는 속도를 내 손은 따라가지 못한다.
내가 어디에 살게 되어서, 내가 어떤 걸 쓰게 되어서,
이와 같은 결정적인 계기라는 건 없었다.
계기는 없다. 외부적인 충격도 없었다. 한 때는 '~ 할 수 있게 되길 도와주세요'라고 빌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아주 서서히, 일상의 조그마한 깨달음과 자잘한 생각들로부터 조금씩 변해왔다.
다만 환경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여러 변화도 가능한 것이었을 뿐. 삶은 언제나 과정이기에.
2.
'총체성'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 나의 총체성도 감당 못하면서, 무언가의 총체성을 알고싶다는 생각은(혹은 파악하고싶다는 생각은) 굉장히 무모할 것이었다고 새삼 실감한다.
내 자신이 파편화되어있는 것 같다. 그런 나를 떠올리면 무언가 불안정해진다. 그리고는 그 비어있는(연결되지 않는 혹은 해석되지 않는) 구석구석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이러저러한 모든 것이 결국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나를 유기체는 결코 하나의 정의와 하나의 '방'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진정한 의미에서 '화해'라는 것도 허상일 수 있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것도 나, 저런 것도 나, 그런 여러가지 나를 인정해서 결국 난 어디로 가려 하는가? 그런 '나'를 가지고, 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것인가?
3.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이 한정없이 막막한 것 만큼이나 현실세계도 끝없이 막막하다. 내 마음과 내면과 정신 속에서 헤메이다가 나는 현실 속에서도 길을 잃는다. 이 세상은 만만한 것이 아니야. 내 안의 여러 방을 들여다보고, 들어가 눕고, 그 안에 숨어있는다 한들, 그 안에서 나를 보듬고 가다듬고 고요한다고 한들, 현실과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결국 내 안이 황폐해진다. 언제나 능숙한 모드체인지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결국 지금 내가 찾고 있는 것은 '현실 공간의 한 자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뿌리의 비유는 적절치 않다. 땅은 언제나 유동적이고, 나는 땅 위의 생물은 아니다. 닻을 내릴 공간, 부유하는 존재로서 나는 잠시나마 닻을 내릴 어딘가를 찾아헤메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줄을 모르겠다.